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주메뉴
전체메뉴

조회 136
2026-10-20 00:00
고결(중국어 통역가)

저는 중국에서 의학을 전공했습니다. 중국으로 유학 온 한국인을 만나 결혼해 네 살 된 첫아이와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이듬해 둘째 아이를 낳았고, 이후 셋째 아이까지 세 아이를 키우며 한국에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특히 둘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았습니다. 중국에서 취득한 의사 자격은 한국에서 그대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했지만, 서툰 한국어로 낯선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치며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수강생들이 중국어를 익히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해 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둘째 아이가 아파 병원을 찾았을 때 언어의 장벽을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고 아이의 상태를 전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언어의 장벽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넘어, 필요한 진료와 도움을 받는 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19로 중국어 수업이 줄어들 무렵, 의료통역사 모집 공고를 보았습니다. 중국에서 공부하며 쌓은 의학 지식과 한국어 능력을 활용해 병원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2009년 병원코디네이터 과정을 시작으로 의료통역사 과정, 통번역 전문가 양성과정, 이주민 공공의료코디네이터 양성교육을 차례로 수료하며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이후 의료통역 활동을 시작하면서 제가 한국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돕는 힘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의료통역 현장에서 저는 환자의 증상과 병력, 복용 중인 약 등을 확인하고 환자의 말과 의료진의 설명을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의학을 공부한 경험은 의료 용어와 진료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료통역은 의학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통역사가 임의로 판단하거나 원래 의미를 바꾸지 않고, 환자와 의료진 양측의 말을 정확하고 중립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의료통역 활동을 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활동하는 양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주민들을 돕기 위해 애쓰는 분들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고, 저 역시 제가 가진 언어와 경험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후 센터를 통해 부산의료원에 파견되어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통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부산의료원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진료과에서 동시에 통역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진료과에서 통역을 마치면 다른 진료과로 급히 이동해야 했고, 때로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의료통역사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환자와 의료진의 배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려에 보답하고자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통역에 임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중국인 노동자가 있습니다. 간경화로 복수가 심하게 차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한국어가 서툴고 의료비 지원제도도 알지 못해 치료가 늦어진 환자였습니다. 이 일을 통해 아무리 좋은 지원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필요한 사람이 관련 정보를 알지 못하면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정확한 통역뿐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고 적절한 지원으로 연결하는 일 역시 의료통역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통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환자가 자신의 아픔을 충분히 설명하고 의료진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특히 낯선 환경에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정확한 통역은 원활한 진료와 치료를 돕는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환자의 불안에도 귀를 기울이며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제가 의료통역 현장에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언어의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었듯, 이제는 저의 언어와 경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해 언어와 정보의 부족으로 필요한 치료와 지원을 놓치는 외국인 주민들이 없도록 곁에서 돕겠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환자와 의료진을 잇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의료통역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