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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0 00:00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호세인
호세인(가명)은 6년 전, 스무 살이 되어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파키스탄 노동자와 한국인 여성은 국적, 언어, 문화, 종교를 뛰어넘어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2000년 호세인은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서 태어났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해야 했던 파키스탄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파키스탄의 친가로 보냈고, 한국의 공장을 전전하며 아이의 양육비를 보냈다. 아이는 파키스탄의 할머니와 삼촌 등 대가족의 사랑 속에서 성장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 무렵, 주양육자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자꾸 넘어지고 쓰러져 온몸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발작을 일으키고 나면 몸은 점차 쇠약해졌고, 말도 어눌해졌다. 파키스탄의 친척들은 청년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발을 굴렀다. 결국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해 “호세인이 많이 아픈 것 같으니, 복지가 좋은 한국으로 데려가 치료하는 편이 좋겠다”고 전했다.
다섯 살에 떠나 16년 만에 다시 밟은 고향 한국은 춥고 낯설었다. 호세인은 한국 여권을 가졌지만, 다섯 살 이후 단 한 번도 한국어를 쓰지 않았다. 파키스탄 학교에서는 영어를, 가족들과는 우르두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분명 그의 고향이지만, 그 어떤 연결고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아버지는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호세인에게는 배다른 동생들이 생겨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늘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호세인이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단칸방 하나를 구해준 뒤 혼자 살게 했다. 가끔 파키스탄 음식을 가져다주고 병원에 데려갈 뿐이었다.
호세인은 점점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그는 부산 변두리의 비좁고 지저분한 방, 매트리스 위에 누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뇌전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어눌한 말투로 호소한다.
“난 한국에 있기 싫어요. 파키스탄에 보내주세요!”
호세인은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청년이 버겁기만 하다. 아버지는 사회복지사에게 전화해 호세인을 시설에 입소시켜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호세인의 몸은 점점 불편해지고 있지만, 그는 시설에 갇히고 싶지 않다. 파키스탄에서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며, 자신을 파키스탄으로 보내 달라고 호소한다.
한국에서 자라 한국어를 잘 하지만 한국인이 아닌 하룬
하룬(가명)는 파키스탄 출신 난민이다. 10살 때 한국에 와 어느덧 14년을 살았다. 하룬은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다녔다. 학창 시절을 한국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금 별난 친구들도 있었지만,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과서로, 한국어로 공부했다. 무슬림이라 돼지고기 반찬은 먹지 않았지만, 한국 아이들과 같은 급식을 먹으며 자랐다. 외모는 달라도 친구들은 그를 당연히 한국인이라 여겼다. 하룬 스스로도 자신이 한국 국적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굳이 내색하거나 알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룬은 가정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취업이 잘된다는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학년 때부터 도제 수업에 참여하며 학업과 취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가 컸다. 호텔리어의 꿈을 품고 양복과 구두를 맞추며 취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은 채용할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더 실망할 부모님을 생각해 내색하진 않았지만, 자신 앞을 막아서며 세상의 문이 “꽝” 하고 닫히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 국적은 아니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문 하나가 닫히자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한국 아이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넘나드는 수많은 문 중, 나에게 허용된 문은 과연 몇 개나 될까?'
하룬은 암담해졌다. 심지어 친구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군대조차 가고 싶어졌다. 한국 친구들이 투덜거리면서도 당연하게 이행하는 의무들조차 자신에게는 이행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다. 하룬 역시 친구들처럼 의무를 다하고, 그만큼의 권리도 당당히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회조차 없는 현실이 억울했다.
요즘 하룬은 대학을 휴학하고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고 있다. 한국인만큼 한국어를 잘하지만, 그는 여전히 외국인이자 난민이다. 그에게 허락되는 좋은 일자리는 없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도 사업주는 노동 계약 대신 프리랜서 계약을 요구하곤 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월급을 더 많을 수 있어 너에게 유리한 거야”라는 말에, 일 경험이 없던 그는 다들 그렇게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계약은 그를 언제든 쉽게 해고될 수 있는 처지로 내몰았고, 실업급여나 산재보험 같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그를 배제시켰다. 실제로 출근길에 회사가 제공한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 다쳤지만, 산재 처리는 받지 못했다.
하룬은 한국에서 그저 보통의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난민인 그가 한국인이 되려면 영주권을 받고 6개월이 지나야 귀화 신청이 가능하다. 문제는 영주권 신청 단계부터 막힌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거대한 문이 그를 막아서고 있다. 한국어를 비롯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GNI(1인당 국민총소득) 기준에 맞춘 연봉 요건 때문에 영주권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나 사람답게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청년 호세인은 한국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파키스탄 국적이지만 정작 파키스탄에서는 보호받지 못하고 한국에서 자란 청년 하룬은 한국인으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이들은 대체 어디에 속해, 어디서 살아야 사람답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